일요일의 단추 by vom_logue


내 요일은 일요일 거꾸로 해도 일요일

일요일에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결의 같지 않은 결의로 
할 때는 내 방 이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일요일도 있었다.
왜냐고? 일요일이니까!

앞글자와 마지막 글자가 반복되도 유일하게 어울리는 날.
월요월 화요화 수요수 목요목 금요금 토요토

물론 예외도 있어서 애인과 함께 동대문 디디피에 가는 오늘 같은 일요일도 있다.
Styleshare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의 플리마켓이 열렸더랬다,
입장 줄이 어찌나 길던지 입을 떡 벌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본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는데 애인의 고속티켓행으로 바로바로 입장 :-) 능력자시네요.

도너츠 가게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꽈배기 두 개 같기도 하고
울이 잔뜩 들어간 코트 소매자락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 하나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스타일쉐어의 로고인 것으로 추정되는 문양 스티커를 사람들이 몸에 붙이고 다니는 신기한 광경도 봄. 스티커쉐어...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다녔지만
게다가 옷을 보는 눈이 다른 애인과 내가 유일하게 동시에 예쁘다!를 외쳤던 멜빵바지를 득템하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도 단돈 오천 원! 
비주얼은 오만 원인데, 맘에 쏙 들어 화장실 가서 바로 입고 돌아다닐 정도, 다시 한 번 단돈 오천 원!
이거시야말로 플리마켓이지 고럼고럼.

그리고 근처의 양꼬치집에 가서 양꼬치에 칭따오를 들이킨 다음
청계천을 걸었다.


날이 좋아서
겨울을 앞둔 채 그리 길지 않은 가을이니까
거리거리에는 즐거운 표정으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바닥에 박힌 가지각색의 돌멩이도 물위에 크고작은 단추모양의 흐름을 만들어내던 송사리들도 
나도 너도 기쁘디 기쁜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기쁜 우리 일요일

청계천을 걸으며 올려다본 핑크구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날들을 단추로 만들어 마음에 콕콕 박음질한 다음
심심할 때마다 꺼내보고 싶다. 꺼냈다가 다른 위치에 다시 박음질 콕콕 하고.
크고작고 색색깔의 단추가 내 마음에 바느질되겠지.

오늘의 일요일을 새긴 단추를 마음에 달고
단추(短秋)를 보내는 밤이다.

단추들아 굿나잇
내일은 월요일이란다.


그나저나 멜빵바지를 득템했던 곳의 브랜드 이름을 알아오지 못해서 안타깝다.
단골이 될 수 있었을 텐데(...)